진실의 입, 거짓 없는 세상 속으로
얼마전 대선을 치르고 문득 영화 <정직한 후보>가 떠올랐습니다. 영화 「정직한 후보」는 2020년 2월 개봉한 한국 코미디 영화로, 장유정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라미란, 김무열, 나문희 등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정치계의 뒷이야기와 인간 내면의 위선을 익살스럽게 꼬집으며 진실과 거짓의 경계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시종일관 유쾌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문제의식을 가볍게 스치고 지나가지 않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주요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3선 국회의원 주상숙(라미란)은 선거를 앞두고 최고의 거짓말 제조기로 명성이 자자한 인물입니다. 어느 날 할머니(나문희)의 병문안을 간 후 갑자기 어떤 상황에서도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그동안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했던 온갖 거짓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자 그녀의 정치 인생과 사생활은 걷잡을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합니다. 이런 기상천외한 설정을 바탕으로 영화는 인간의 욕망, 정치인의 위선, 사회의 관습화된 거짓말 등을 풍자하며 관객을 웃기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강점은 배우 라미란의 탁월한 연기력에 있습니다. 특유의 생활 밀착형 연기와 순간적인 표정 변화, 몸짓 하나하나가 캐릭터의 황당한 상황과 심리를 실감나게 살려냅니다. 과장된 설정이지만 라미란 덕분에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현실적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특히 진실을 말하고 싶지 않아 온몸을 비트는 장면이나 입을 막으려다 결국 터져 나오는 진실의 말들은 슬랩스틱 코미디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상대역인 김무열 역시 국회의원 보좌관으로서의 고충과 당혹감을 세밀하게 표현하며 라미란과 좋은 호흡을 맞춥니다.
웃음 속에 담긴 정치 풍자
「정직한 후보」는 한국 정치의 씁쓸한 현실을 코미디로 승화시킨 작품입니다. 정치인의 공약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여과 없이 보여주며, 선거철만 되면 유권자에게 달콤한 말을 건네는 현실 정치인들의 행태를 신랄하게 비꼽니다. 하지만 이런 풍자가 결코 무겁거나 불편하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쾌하고 시원한 웃음으로 관객의 스트레스를 날려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도 이런 거짓말에 길들여진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국미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고 서로 끌어내릴려고 하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지금의 정치인들의 모습을 더 안타깝게 만듭니다.
특히 주상숙이 각종 공식 석상이나 방송 인터뷰, 기자회견 등에서 의도치 않게 진실을 폭로하는 장면들은 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미소 짓고 있어야 할 순간에 분노가 터지고, 온갖 미사여구로 꾸며야 할 멘트가 솔직한 막말로 돌변하면서 발생하는 해프닝들은 관객에게 짜릿한 쾌감을 안깁니다. 동시에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정치인의 거짓말’이 얼마나 시스템적으로 자리 잡았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웃기기’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캐릭터와 상황을 통해 정치권의 부패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위선을 돌아보게 만들며, 진실을 말할 자유와 그 책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진실은 과연 좋은 것인가?'라는 명제를 극 전체에 걸쳐 유쾌하게 고민하게 한다는 점이 돋보입니다.
아쉬운 점과 결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완벽하게 만족스럽지만은 않습니다. 우선 이야기 구조가 예상 가능하다는 점이 약점입니다. 주상숙이 거짓말을 못하게 된 이후 벌어지는 상황들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다 보니 후반부로 갈수록 신선함이 줄어듭니다. 캐릭터 변화도 다소 평면적입니다. 주상숙이 어떤 계기로 변화를 결심하게 되는지, 그 내면의 갈등이 충분히 설득력 있게 그려졌다면 더 깊이 있는 작품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 과도하게 코믹한 장면들은 작품의 주제의식이나 메시지를 흐릴 위험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은 장르적 특성상 충분히 이해 가능한 부분입니다. 원작이 브라질 영화 「O Candidato Honesto」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플롯 제약이 있었고, 한국적 현실에 맞게 각색하면서도 무리하게 메시지를 강화하려 하지 않은 점은 오히려 장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관객들은 극장을 나서며 "시원했다", "재미있었다"는 평을 많이 남겼습니다. 이는 본래의 목표인 오락성과 사회 풍자의 균형을 일정 부분 성공적으로 맞췄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정직한 후보」는 정치 풍자 코미디라는 장르 안에서 적절한 웃음과 사회적 메시지를 버무린 보기 드문 작품입니다. 라미란의 원톱 주연이 만들어낸 무게감과 유쾌함이 영화의 전반을 끌고 가며, 그 속에서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와 관습화된 거짓말 문화를 꼬집습니다. 물론 이야기 전개의 단조로움이나 캐릭터 심리 묘사의 부족 등 아쉬운 지점도 존재하지만, 장르의 특성과 관객의 기대치를 고려했을 때 충분히 즐겁고 의미 있는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영화가 끝난 후 남는 여운은 ‘진실의 가치’입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인가?"라는 물음은 영화 속 정치인의 이야기를 넘어 현실 속 우리의 삶에도 적용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정직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에서 솔직함이 어떤 변화를 불러올 수 있을지, 이 영화는 그 물음을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게 던지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정직한 후보」는 가볍게 웃고 즐기기에 충분한 작품이면서 동시에 씁쓸한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정치풍자 코미디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했지만, 라미란이라는 배우를 중심으로 한 안정적인 연기와 속 시원한 전개 덕분에 누구나 편하게 볼 수 있는 오락영화로 추천할 만합니다. 사회 비판과 대중적 재미의 경계를 적절히 지키며 관객에게 작은 생각거리를 남긴다는 점에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