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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 리뷰

by 별책별하 2025. 6. 18.

 

영화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 리뷰 – 욕망과 배신의 끝자락에서

영화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
영화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

돈은 인간을 어떻게 바꾸는가?

2024년 개봉한 영화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는 제목부터 강렬한 인상을 주는 범죄 스릴러입니다. “돈”이라는 누구나 탐내는 대상, 그리고 그 돈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과 추악함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돈 앞에서 무너지는 인간의 도덕성, 신뢰의 붕괴, 배신과 음모 등 장르 영화가 자주 다루는 테마를 한국적 정서로 풀어낸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 작품은 일본 만화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오카모토 켄타로 원작)를 원작으로 삼고 있으나, 단순한 리메이크에 머무르지 않고 한국 사회의 정서에 맞게 각색된 범죄극입니다. 감독은 정가영이며, 주연으로는 류준열, 유재명, 천우희 등이 출연해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무게감 있는 드라마를 완성해 냈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제목 그대로 "더러운 돈"입니다. 극 중 인물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거액의 현금을 손에 쥐게 되는데, 그 순간부터 서로에 대한 믿음은 빠르게 무너지고, 상황은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류준열이 연기한 ‘지훈’은 평범한 은행원이지만 우연히 거대한 돈세탁 사건에 휘말리며 점점 윤리적 경계가 무너져 갑니다. 처음에는 사건을 덮으려는 ‘합리화’로 시작하지만, 이내 그 자신도 "그 돈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이라는 유혹에 서서히 물들어 갑니다. 유재명이 연기한 조직의 중간 관리자 ‘철수’는 겉보기엔 이성적인 인물이지만, 결국 가장 폭력적인 방식으로 상황을 해결하려 합니다.

감독은 돈이 인간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비교적 직선적으로 보여줍니다. 그 변화가 어느 순간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진행된다는 점이 이 영화의 설득력을 높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런 선택을 나는 하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게 하며, 단순한 범죄 영화 이상의 여운을 남깁니다.

연기와 연출의 시너지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입니다. 류준열은 기존의 다소 순수하고 젊은 캐릭터에서 벗어나, 처음에는 망설이다 점차 욕망에 물드는 지훈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그의 눈빛은 장면이 거듭될수록 냉정하고 차가워지며, 내면의 변화가 매우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유재명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과거의 배역들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폭력과 위협의 균형을 잡으며 냉혹한 인물을 연기합니다. 그리고 천우희는 사건의 중심에서 양심과 생존 사이를 오가는 인물로 등장하여, 이들의 비극적인 구조를 더욱 복합적으로 만들어 줍니다.

연출 역시 과잉 없이 정제된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흔히 범죄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과장된 총격전이나 스펙터클보다는, 긴장감 있는 대사와 정적인 구도를 통해 내면의 폭력성을 묘사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어두운 색감과 제한된 조명, 불안정한 카메라 워킹 등은 인물의 불안과 상황의 위태로움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음악 역시 인상 깊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감정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위험이 도사리는 순간에는 절묘한 타이밍으로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사운드트랙이 존재감을 발휘합니다.

믿음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는 단지 돈을 둘러싼 범죄극을 그린 것이 아닙니다. 이 영화는 결국 인간 사이의 "신뢰"에 대해 묻고 있습니다. 서로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언제 그 믿음이 무너지는지, 그리고 그 무너진 관계는 회복될 수 있는지에 대해 되짚어 보게 만듭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드러나는 반전은 단순한 놀라움을 넘어선, 진한 허무함과 씁쓸함을 남깁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관통하는 이 영화는, 범죄물로서의 매력은 물론 인간 내면의 복잡한 감정을 효과적으로 건드리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마치며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는 한국형 범죄 스릴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작품입니다. 화려한 액션이나 반전을 기대하기보다는, 인간 심리의 어두운 면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긴장감을 즐기고자 하는 관객에게 추천드릴 만합니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아마 누구나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지게 될 것입니다.
“내가 그 돈을 마주쳤다면, 나는 과연 손대지 않을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