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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17》 리뷰 - 죽음을 되묻는 디스토피아 속의 인간성

by 별책별하 2025. 6. 3.

영화-미키17
영화-미키17

 

 

1. “죽어도 다시 살아납니다” – 존재의 반복이 주는 공포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으로 많은 기대를 모은 영화 《미키17(Mickey 17)》은 독특한 세계관과 철학적 주제를 내세운 SF 드라마입니다. 원작은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Mickey7>으로, 인간 복제체를 소모품처럼 사용하는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미키는 자살이나 타살, 사고 등 어떤 이유로든 죽을 때마다 복제되어 깨어나는 특수한 임무를 가진 ‘소모 가능 인간(disposable human)’입니다.

영화는 이 미키라는 존재를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죽음’이라는 개념에 질문을 던집니다. 죽음이 반복 가능하다면 그것은 정말 죽음일까요? 고통과 상실 없이 다시 태어나는 삶이 과연 삶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이 작품은 죽음을 단순히 극복해야 할 공포로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죽음이 주는 무게감, 존재의 고유함, 그리고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을 유도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면서 ‘죽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있기에 삶이 유일무이해지고, 현재의 선택이 의미를 갖는다는 것. 그런 맥락에서 미키의 반복되는 생은 오히려 점점 공허해지는 악순환으로 느껴졌습니다. 유한함이 주는 감정의 진폭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라는 걸 이 영화는 조용히, 그러나 날카롭게 전하고 있습니다.

2. 복제 인간과 정체성 – ‘나’는 어디서 시작되고 끝나는가

《미키17》의 중심 갈등 중 하나는 바로 ‘정체성’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미키가 죽을 때마다 새로운 복제체가 만들어지고, 그 복제체는 전신의 기억을 공유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모두 같은 사람일까요? 아니면 각각의 인격체일까요? 영화는 이런 복잡한 철학적 문제를 미키의 시선에서 풀어갑니다. 특히 하나의 인물로서 미키가 느끼는 혼란과 고독, 그리고 자아를 지켜내려는 몸부림은 이 영화의 가장 큰 감정적 줄기이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중후반부에는 복제된 미키들이 서로 마주치며 ‘어떤 미키가 진짜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게 됩니다. 육체는 같고 기억도 같지만, 서로 다른 감정과 판단을 가진 이 존재들은 같은 존재일 수 있을까요? 이 장면들은 인간이란 단순한 기억의 총합이 아니라, 경험과 감정,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켜줍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단순한 복제 SF를 넘어, 우리가 스스로를 정의하는 방식에 대해 질문합니다. 물리적으로 동일한 존재들이 서로를 ‘나’라고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정체성이란 것이 단순히 복제할 수 없는 감정의 결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3. 시각적 충격과 개인적인 한계 – 잔인한 장면에 대한 아쉬움

시각적으로도 《미키17》은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우주 도시의 디테일, 복제 기술의 묘사, 인간의 육체를 재구성하는 과정 등은 놀라운 CGI와 세트 디자인을 통해 구현되었고, 보는 이로 하여금 미래 사회의 차가움과 기괴함을 생생히 체감하게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영화는 꽤 많은 육체적 폭력과 잔혹한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저처럼 잔인한 장면에 약한 관객에게는 몇몇 장면이 상당히 힘들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특히 극 초반, 미키가 임무 도중 손이 절단되는 장면은 예고 없이 나타나며, 적지 않은 충격을 줍니다. 물론 이야기상 필요한 장면이긴 하지만, 이 부분에서 시선을 피하거나 잠깐 눈을 감고 있었을 정도로 개인적으로는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이러한 장면들이 이야기의 긴장감과 절박함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은 이해합니다. 다만 미리 알고 있었다면 감정적으로 좀 더 준비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민감한 관객 분들은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단순한 자극이나 충격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철학적 질문과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를 통해 보는 이의 마음을 오래도록 붙잡아 두는 힘이 있습니다. 마치 잔혹한 현실을 통해 진짜 따뜻함을 더 부각시키는 문학작품처럼, 《미키17》은 인간다움이라는 단어가 어떤 맥락에서 빛을 발하는지를 끝까지 놓지 않고 묻고 있습니다.

《미키17》은 인간과 죽음, 존재와 반복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놀랍도록 섬세하게 다룬 작품입니다. 철학적이면서도 감정적인, 그리고 과학적이면서도 시적인 이 영화는 관객 개개인에게 다른 물음을 남길 것입니다. 지금의 나, 그리고 언젠가 사라질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아마도 이 질문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