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정우, 감독과 배우로 돌아오다
영화 《로비》는 배우 하정우가 감독과 주연을 동시에 맡아 화제를 모은 작품입니다. 2013년 《롤러코스터》, 2015년 《허삼관》 이후 무려 10년 만의 연출 복귀작이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고, 그만큼 기대도 컸습니다. 하정우는 이 작품에서 한 스타트업 CEO인 ‘창욱’ 역을 맡아, 비즈니스 세계에서의 ‘로비 골프’라는 다소 낯설지만 흥미로운 주제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기존의 정치나 기업 비리를 무겁게 다루던 영화들과는 달리, 《로비》는 이 모든 상황을 유쾌하고 위트 있게 풀어냅니다.
특히 하정우 특유의 자연스럽고 능청스러운 연기는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줍니다. 연출에서도 무리하게 진지하지 않고, 가볍지만 통찰력 있게 이야기를 전개하는 솜씨가 인상 깊습니다. 이 영화는 "로비"라는 단어에서 느껴질 수 있는 무거움 대신, 익숙한 인맥 게임과 어설픈 골프 실력으로 벌어지는 해프닝들을 위트 있게 보여줍니다.
2. 로비 골프에 뛰어든 초짜 CEO의 고군분투
주인공 창욱은 기술력 하나로 스타트업을 일으켜 세운 인물이지만, 대기업의 장벽과 공공기관 입찰 시스템 앞에서 한계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찾아오죠. 4조 원 규모의 정부 사업에 도전할 수 있는 길이 열리지만, 그 문을 여는 ‘열쇠’는 바로 정치권 실세와의 골프 라운딩입니다. 그는 평생 골프채 한 번 제대로 잡아본 적 없는 ‘골알못’이지만, 로비 골프의 문법에 적응하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영화는 이 적응 과정을 유쾌하게 그려냅니다. 연습장에서 혼자 우산을 들고 연습하는 장면, 연습 스윙 중 골프공 대신 고무장갑이 날아가는 장면, 심지어는 골프복장을 입고도 신발은 슬리퍼인 장면 등, 현실에서 겪을 법한 실수들이 유머로 변주됩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하정우의 표정 연기와 타이밍이 압권입니다. 보는 이로 하여금 "나도 저랬지" 하는 공감과 함께 웃음을 자아내게 만듭니다.
특히 골프라는 운동 자체가 가진 격식과 장벽, 그리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로비의 세계는 기존 영화들이 잘 다루지 않았던 신선한 소재입니다. 《로비》는 이 점을 캐치하여, 관객들에게 낯설지만 흥미로운 세계를 보여주며, 동시에 골프장이라는 배경 속에서도 권력의 작동 방식이 어떻게 코미디가 되는지를 탁월하게 보여줍니다.
3. 웃음 속에 담긴 풍자, 캐릭터들의 앙상블
《로비》는 단순한 개인의 성장담이나 스포츠 코미디에 그치지 않습니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로비’라는 행위를 행하며, 그들의 선택과 말 속에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풍자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습니다. 정치권 실세 ‘최실장’(김의성)은 말 한 마디에 업계가 들썩이는 인물이고, 돈이면 뭐든 해결해주는 박기자(이동휘)는 골프장 안팎에서 로비를 중개하는 인물입니다. 강말금, 박해수, 차주영, 곽선영 등 개성 있는 조연들도 영화의 분위기를 적절히 살려주며, 하나같이 자신의 위치에서 코믹하고 생동감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다양한 인물들이 보여주는 풍자적 메시지는 생각보다 묵직합니다. 단지 골프를 못 쳐서 입찰에 실패하는 게 아니라, 시스템 자체가 인맥과 구력으로 움직인다는 점은 현실에서도 공감할 만한 지점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 구조적인 문제를 비판적으로만 다루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버티고, 어떻게 웃을 수 있는가’를 중심에 두고, 웃음으로 그 현실을 비틀며 통찰을 이끌어냅니다.
결론: 하정우표 코미디, 유쾌함 속의 풍자
《로비》는 코미디 장르로서 매우 성공적인 영화입니다. 하정우의 연출은 한층 여유로워졌고, 대사 하나, 표정 하나에도 ‘생활 연기’의 정수가 담겨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단순히 웃긴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단면을 담백하면서도 날카롭게 비추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로비를 둘러싼 골프장 속 유쾌한 소동극은, 보는 이에게 시종일관 즐거움을 선사하면서도 결국엔 진지한 질문을 남깁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실력보다 관계를 먼저 보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로비》는 이러한 질문을 무겁지 않게, 그러나 가볍지도 않게 던져줍니다. 그렇기에 더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한바탕 웃음 속에서 진지한 생각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